한나와 엘리의 자녀교육, 결정적 차이 1가지

지난 글애서 말씀드린 것처럼, 홉니와 비느하스는 타락한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었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량배나 다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평범한 부모의 아들인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요? 오늘은 한나와 엘리의 자녀교육에 있어 결정적 차이 한 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나와 엘리의 자녀교육, 결정적 차이 1가지

결론적으로 말해, 한나에게는 있고 엘리에게는 없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무엇으로 가득한가. 이것에 따라 그들의 인생과 자녀의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지도자의 인생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한나의 아들 사무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1. 한나

사무엘의 어머니는 우리가 잘 아는 한나입니다. 그의 아버지 엘가나에게는 한나 말고도 브닌나라는 아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문제는 브닌나만 자식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부부

그런데 그렇다고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푸대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단한 사랑꾼이었습니다. 한나에게는 제물의 몫을 브닌나보다 갑절이나 챙겨주고, 질투하는 브닌나로 속상해 하는 한나에게 왜 마음이 슬픈지 물으며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않냐’ 묻기까지 했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또 나중에 한나의 서원을 무시하지 않고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걸 보면, 아내를 존중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나된 가정이야말로 모든 가정 교육의 기초가 됩니다.

나. 한나의 기도

어쨌든 자식 없는 설움에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무엘상 1:11)

다. 기도 응답과 서원을 지킨 한나

한나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기도를 마치고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愁色, 근심스러운 기색)이 없으니라(사무엘상 1:18)’고 나와 있거든요. 그들은 집에 돌아가 동침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잉태,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슈무엘(שְׁמוּאֵל)’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 사무엘상 1:19-20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한나와 엘가나 부부는 사무엘이 젖떼기를 기다렸다가 그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대한 한나의 응답이었습니다.

  • 사무엘상 1:27-28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한나는 기쁨으로 사무엘을 드렸고,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라났습니다(사무엘상 2:21).

2. 엘리의 교육이 실패한 이유

엘리는 자녀교육에 실패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벨리알의 자식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그릇된 행실을 보였습니다. 제물로 바치는 고기를 삶는 중에 갈고리로 건져 강탈하고, 거룩한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그자리에서 욕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단을 자기 음욕으로 더럽힌 것만 아니라, 가나안의 우상 숭배의식을 들여온 배도행위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아버지의 훈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육으로나 영으로나 엘리의 가정교육은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가. 엘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전도란 어렵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 마음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엘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고, 따라서 엘리는 하나님을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나. 한나의 기도를 술주정으로 본 엘리

엘리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했다면, 한나를 술에 취해 주정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제대로 봤을 것입니다.

  • 사무엘상 1:13-14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다. 하나님 대신 아들을 섬긴 엘리

그랬던 엘리였기에 그 마음에는 하나님보다 못난 아들들이 더 귀하고 크게 자리잡았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귀한것,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엘리는 하나님보다 아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제사장은 커녕 일반인으로서도 도무지 할 수 없는 짓을 벌이는 아들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직장에서도 그런 짓은 오너 일가의 심각한 횡령, 배임, 직권남용, 성 비위에 해당되고, 형사고발과 해고, 손해배상, 더 나아가 오너 일가 퇴진 등 사내 지배구조가 개편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저 말로만 나무라는데 그쳤습니다.

  • 사무엘상 2:12-17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 사무엘상 2:22-25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라.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

이렇게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긴 엘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심판을 경고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하시지만, 당신을 멸시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다.

한나와 엘리의 자녀교육, 결정적 차이 1가지
Joshua Reynolds Infant Samuel

또한 성막에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엘리가 아니라 어린 사무엘이었습니다. 제가 어릴적 택시를 타면, 백 미러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적힌 귀여운 소년 그림이 많이 달려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가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시공을 뛰어 넘어 간절히 기도하는 아이의 상징으로 여겨진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얼마나 귀하고 기특했을까요.

  • 사무엘상 2:29-34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블레셋과 싸울 때,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를 마치 부적처럼 여기고 실로에서 에벤에셀로 옮겨갔습니다. 그들은 결국 함께 죽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앉은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 사무엘상 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 사무엘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

엘리의 실패는 만년의 나태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들들이 그렇게 자란 데는 오랜 세월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귀히 여겼고, 그 우상숭배적 사랑이 아들들을 망쳤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신앙도 전할 수 없었고, 신앙이 없으니 진정한 권위도 생길 수 없었으며, 권위가 없으니 훈계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으로, 가정적으로, 직분자로서도 모두 무너진 것은 그 한 가지 뿌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마. 사무엘을 가르친 것도 엘리

흥미로운 것은,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운 것도 다름 아닌 엘리라는 점입니다. 그는 어린 사무엘이 밤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하도록 가르쳤습니다(삼상 3:9).

성전 교육자로서는 탁월했던 엘리가, 정작 자기 아들들에게는 하나님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 역설은 우리에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많은 목회자들, 교육자들이 강단과 교단에서 지식을 전하고 제자를 만들지만, 가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속이기 어협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진짜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말이 아니라 삶에서 읽어냅니다.

맺는말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한나와 엘가나는 사무엘을 기도로 잉태하여 키워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그렇지 못했던 엘리는 하나님 대신 아들들을 섬김으로 아버지로서도 대제사장으로서도 실패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결정지은 것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며, 지식으로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한나처럼 먼저 무릎 꿇는 것이 모든 자녀교육의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도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으로 충만한가. 오직 하나님만 잘 섬기고 있는가. 내 자녀에게 바른 길을 걷도록 가르치고,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말씀을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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