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니와 비느하스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은 사사 시대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로, 그들 역시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관심도 없었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멸시하고, 행실도 형편 없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원인과 배경은 어땠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2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와 죽음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사무엘상 2:12)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사무엘상 2:17)
1. 나쁜 행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쁜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NIV성경에는 wicked men, KJV성경에는 sons of Belial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벨리알이란 말은구약 시대에는 ‘불량배, 불순한 자’라는 의미의 일반명사였으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탄, 마귀를 뜻하는 악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그들의 행실은 그저 타락한 제사장 수준이 아니라 무뢰배에 가까웠습니다.
가. 제사 멸시, 제물 탈취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제사 드리기도 전에 가로챘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물로 바친 고기를 삶을 때면 세 발 달린 갈고리를 솥이나 가마에 넣어 걸리는 고기 덩어리를 가져갔습니다. 또, 기름을 태워 드리기 전에는 ‘제사장이 삶은 고기는 좋아하지 않으니 구워드릴 생고기를 내놓으라’며 억지로 빼앗아 갔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들은 관행적으로 이뤄졌습니다.
- 사무엘상 2:13-15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나. 성전에서 음행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사무엘상 2:22)
게다가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전에서 음행의 죄까지 범했습니다. 그들의 음행에는 크게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성전을 더럽힘
당시 성막은 철저히 통제된 거룩한 구역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은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늘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직장으로 삼은 여성과 동침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바로 성전에서 음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얼마나 거룩한 곳입니까. 그 성전 입구인 회막 문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성전을 동시에 더럽힌 것입니다.
Q. 여자도 성전에서 일할 수 있었나요?
A. 성전의 공식적 핵심 사역은 레위지파 남자들만 할 수 있었지만, 지파에 상관 없이 스스로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친 순결한 여자 서원자들도 비공식 지원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성막 천 세탁, 휘장 제작, 출입구 청소 및 경비, 여성 예배자 안내와 예배 지원 등을 맡았습니다. 물론 성소나 지성소에는 드나들 수 없었고, 일반 백성들도 드나들 수 있는 회막 문(The door of the tabernacle), 즉 성전 마당의 입구 구역에서 일했습니다.
2) 권력형 성범죄
홉니와 비느하스는 대제사장의 아들이며 제사장이라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그런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낮은 위치에 있는 여인들을 성적으로까지 착취했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위계,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되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lay with)’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다릅니다. 성경에 사랑으로 합의하에 하는 동침을 의미하는 야다(알다)나 라카흐(취하다) 대신, 여기에는 ‘샤캅(shakab)’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 야다 (יָדַע) | 샤캅 (שָׁכַב) | |
|---|---|---|
| 기본 뜻 | 알다 (Know) | 눕다 (Lie down) |
| 초점 | 인격적 관계와 친밀함 | 신체적 행위 자체 |
| 성경 속 예시 |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야다)…” (창세기 4:1) 처럼 전인격적인 연합을 표현합니다. | 강간이나 간음 등 부정적이거나 정당하지 못한 성관계를 묘사할 때도 자주 쓰입니다. (예: 다말을 범한 암논,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
3) 이방 종교 모방
홉니와 비느하스의 음행이 고발되어 마땅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가나안 신전의 타락한 음행 문화를 그대로 들여와 하나님의 성소를 우상의 신전처럼 만들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길 때 신전 안에서 여사제들과 성관계를 맺는 음란한 제사 의식(신전 창기 제도)을 행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신이 감동해 땅에 비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런 행위는 육적으로는 음란이요, 영적으로는 배도이며, 하나님의 전을 더럽히는 간악하고 역겨운 것이었습니다.
2. 자식을 우상화했던 엘리 – 잘못된 자녀교육
흔히 ‘문제아는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홉니와 비느하스에게도 적용될까요? 그렇습니다. 누구보다 자녀를 바른 길로 이끌어 모본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 엘리는 자녀 교육을 잘못해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사무엘상 2:1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행실이 불량한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지식이나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대제사장의 아들이요 제사장인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었다니, 엘리의 가정 교육, 자녀 교육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커서 제사장으로 일하면서 그렇게 악한 행실을 하는데도, 엘리가 아들들을 엄히 징계하고 교육하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가 아버지로서 자녀교육에 실패했다면 대제사장의 자격으로라도 엄히 다스려야 했습니다.
최소한 직무 정지나 추방으로 벌하고 끊어내는 대신, 엘리는 그저 말로만 타이르고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 사무엘상 2:23-5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엘리의 이런 잘못된 자녀교육은 그가 자식을 마치 우상처럼 대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손으로 깎고 부어 만든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모두 우상입니다. 엘리의 자식에 대한 눈먼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보다 앞섰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직접 책망하셨습니다.
- 사무엘상 2:29-30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3. 그들의 결국은 심판
이미 벨리알의 자식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뢰배가 된 홉니와 비느하스는 말뿐인 아버지 엘리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받을 심판을 엘리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사무엘상 2: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 사무엘상 3:13-14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홉니와 비느하스가 최후를 맞은 것은 에벤에셀에서 블레셋과 싸울 때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를 마치 부적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에게 패해 4천 명이나 죽게 되자,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옮겨 진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때 언약궤를 가져온 제사장이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용기 백배하여 전투를 시작했으나, 오히려 블레셋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측 전사자는 3만 명이나 되었고, 법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옵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날 함께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앉은 자리에서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4. 그 뿌리 –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
무섭지 않습니까. 자식을 우상처럼 여기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한 집안의 가장, 아랫사람의 일탈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지도자. 이런 엘리의 잘못은 자신과 아들들, 더 나아가 나라까지 심판 받고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언뜻 보면 잘못한 것은 홉니와 비느하스이고, 엘리는 그저 우유부단한 자식 바보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가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보다 자식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그만큼 우습게 보고 만홀히 여겼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홉니와 비느하스, 엘리의 이야기는 대요리문답 114문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와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20:7)”고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 내 안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자문해 봅니다.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말씀을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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