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바벨탑

창세기 11장 바벨탑

이번 글에서는 창세기 11장 바벨탑 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였더라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1~9)

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처음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하나였다. 노아의 자손들은 모두 같은 말을 썼다. 따라서 의사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흩어짐을 면하자

노아의 후손들 중 몇은 동방으로 이동하다 시날 땅에 있는 평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기서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시날 평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주변으로 지금 이라크에 속해 있다.

이 지역은 퇴적 평야라 비옥한 초승달로까지 불렸지만, 석재나 목재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건축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벽돌을 이어 붙이는 데는 역청을 사용했다.

그들은 그렇게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했다. 그뿐 아니라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세우기로 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 이름을 내어 하나님과 견주기 위해서였고 세상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쌓은 것은 다음과 같은 악한 동기 때문이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자기 이름을 높이고 하늘까지 않는 탑을 세워 하나님과 자기를 견주고자 했다. 이것은 교만이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과 자기를 견주고 능가하고자 했던 사탄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도 사람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며 유혹했고, 또 시날 땅 백성들도 반역의 영을 심어 탑을 쌓도록 충동질했다.

둘째, 땅에 편만하라(창세기 9:7)는 말씀을 거역하고 흩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 없이 하는 연합은 늘 개인을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단결이 되기 마련이다. 악하기 때문이다.

세째, 믿음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주시며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언약(창세기 9:11~17)을 믿지 않고, 인간의 힘만으로 다시 올지 모르는 천재지변을 극복하고자 애썼다. 다시 생각하면 대중에게 홍수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심고, 이것을 권력집중과 유지 수단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3.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건설한 도시와 망대를 보시고 기뻐하지 않으셨다. 문제는 그들의 교만이었다. 그들은 교만했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역했다.

인간은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경외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쌓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결집해 이런 악한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 족속도 하나고 사용하는 언어도 하나기 때문이었음을 아셨다. 또 이걸 허용하면 그다음은 더한 일도 할 거라는 걸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쁜 방식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세상 곳곳으로 흩으셨다. 그들은 성과 탑 쌓는 일을 지속할 수 없었다.

4.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모든 건설이 중단된 그 도시 이름을 바벨이라 부르게 되었다. 바벨이란 말은 원래 아카드어의 바빌루(Babilu)로 ‘신의 문’이란 뜻이었으나, 이 일을 계기로 혼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벨(Balbel)로 불리게 되었다.

신의 문이라고 한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을 가리킬까. 바빌론 사람들이 섬겼던 주신은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의 마르두크였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그들이 어떤 잘못된 대상을 신으로 삼아 섬기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교만과 반역으로 얼룩진 사건을 일으킨 무리는 누구였을까. 성경에는 딱 누구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곳이 시날 평지(창세기 11:2)였다는 점과 니므롯의 나라가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 악갓, 갈레에서 시작해 앗수르를 점령(창세기 10:8~12)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니므롯이 이끄는 함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창세기 10장 함의 자손

사람을 사냥감 취급하여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란 별명을 얻은 니므롯은 바벨에서 엄청난 일을 꾸미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과연 그가 그 일을 멈췄던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벨 탑이 지구라트의 원형이라면, 지구라트가 발견되는 위치와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니므롯의 영토 확장 경로가 겹치는 것으로 미루어, 바벨 이후로도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쌓는 일은 꾸준히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바벨에 쌓았던 탑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지구라트의 원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물론 그 규모는 바벨에서 했던 것에 비해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르에 남아있는 지구라트 유적도 밑변이 62.5*43m나 될 정도다.

혹자는 바벨탑을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느부갓네살왕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느부갓네살 왕은 기원전 586년 남유다를 무너뜨리고 많은 포로를 바빌론으로 끌고 간 인물이다. 동시대 사람으로는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이 있다. 그가 지었다고 하는 것은 마르두크의 지구라트이고, 바벨탑 건설을 지휘한 것은 니므롯으로 알려져 있다.

교만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경외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건설해 모여 살았고, 자기들의 방법으로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며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고자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합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셨다. 우리는 모든 생각과 말, 행동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연약할 때 강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 그 길은 악한 길로 흐르게 마련이다.

에벨은 그런 사람들을 떠나 강을 건너 히브리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 에벨 온 자손).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된다. 경건이 트렌드인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쉽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구별되어야 한다. 거룩함이 다른 것이 아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를 거부하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거룩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타락하고 악한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연합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창세기 11장 바벨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셈의 후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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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wer of Babel Alexander Mikhalchyk@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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