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새로운 언약

창세기 9장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새로운 언약

지난 글에서는 창세기 8장을 읽고 홍수 직후의 상황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 ‘창세기 9장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새로운 언약’ 에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새로운 언약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 9장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새로운 언약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으미니라
  •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세기 9:1~7)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땅에 충만하라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흠향하시고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창세기 8:20~22).

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들을 많이 낳아라. 자꾸 불어나 온 땅을 가득 채워라(현대어 성경).” 이는 아담과 하와에게 복 주시며 하셨던 것(창세기 1:28)과 같은 말씀이다.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짐덩이 취급하거나 골칫거리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비록 그들이 살게 될 땅은 에덴동산 같은 낙원은 아니었다.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그곳은 그저 폐허였다. 하지만 그들은 감사하게도 구원받았고, 무서운 홍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짐승에 대한 권한을 인간에게 주셨다. 들짐승, 집짐승, 날짐승, 길짐승 할 것 없이 모든 짐승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죄가 없을 때의 인간은 사랑으로 피조물들을 다스렸다. 사람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공포로 다스리게 되었다.

사랑으로 이루어졌던 관계가 어그러졌다. 세상의 시스템이 변했다. 동물은 인간을 공격할 수 있고, 인간은 그런 동물을 무섭게 해서 다스리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은 시스템을 어긋나게 했다. 피조 세계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동물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 인간에게 온 지면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먹을 것으로 주셨다(창세기 1:29). 하지만 홍수 이후 세상은 그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지형은 물론이고 대기와 날씨, 우주에서 들어오는 방사선 등 모든 환경이 더욱더 험하게 바뀌었다.

마치 다른 행성에 떨어진 것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느라 더욱 살기 힘들게 되었다. 노동량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이 되어버렸다. 900년 전후였던 수명은 홍수 이후 갑자기 줄어들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더 이상 채소와 과일만 먹고는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채소뿐 아니라 고기(살아있는 짐승의 고기. 죽은 짐승이 아님)도 먹도록 허용하셨다. 육식을 허락하신 것은 아마도 노아 식구들뿐 아니라 바뀌어버린 환경에 처하게 된 인류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고기나 먹어서는 안 되었다. 죽어있는 짐승이 아닌 산 짐승의 고기만 먹어야 했다. 잡지도 않았는데 짐승이 죽어있다면, 그것은 병들었거나 다른 동물이 사냥한 것일 것이다. 그런 고기는 부패와 감염의 위험이 있다.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육식은 허락하셨으나 피채 먹는 것은 금하셨다. 피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학자들은 살아있는 채로 먹지 말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피 자체를 먹지 말라는 의미라고도 한다. 그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율법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분들도 있고, 율법 이전의 말씀이니 지금도 꼭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말이 옳은가.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몸보신을 위해 생피를 먹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은 당연히 건강이나 위생 면에 있어서도 금해야 한다. 하지만 소시지나 순대, 해장국은 어떨까?

가.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

일단 하나님께서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건강을 위하여

피에는 여러 가지 독소와 바이러스, 기생충들이 있다. 이것을 마실 경우 사람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 악한 풍속을 따르지 않기 위해

당시에는 노아 식구들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성경을 보면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의 피를 먹는 악한 풍속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3)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가 바로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피가 빠져나가면 죽는다. 피에는 생명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창세기 4:10)고 하셨다.

피가 생명이라는 것은 또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도 연결된다. 예수님의 보혈을 히브리서에서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히브리서 12:24)’ 라고 했다. 생명으로서의 피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혈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으로 완성되었다.

나. 소시지, 순대, 해장국을 먹어도 될까?

앞서 말한 것처럼 소시지, 순대, 해장국을 먹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롭게 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다. 불순종으로부터 자유롭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로마서 8:1). 따라서 신약 성도들에겐 음식물의 정함, 부정함이 따로 있지 않다.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감사하게 먹으면 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서 2:16~17)

그런데 사도행전 15장 19~20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나와 있다.

이것은 당시 율법에 젖어있던 유대인 신자들이 새로 들어오는 이방인 신자들을 율법으로 얽매어 괴롭게 했기 때문이었다. 괴롭히지 말고 다만 몇 가지 점만 조심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야고보의 의견이었다. 우상숭배와 음행은 어느 시대나 범하지 말아야 할 죄이지만, 목매어 죽인 것과 피에 대한 권고는 영속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2) 모든 것이 가하나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자유롭다고 모든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고, 둘째는 양심에 거리낌이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23~24)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나 그 가한 것이 모두 유익하고 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고린도전서 10:23).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린도전서 8:1).

율법에서 자유롭다며 한 행동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상처입히거나 자극받고 따라 해 죄를 짓게 만들 수도 있다(고린도전서 8장).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로마서14:20)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었다. 모든 것이 다 가하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무너지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3) 양심에 거리끼는가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로마서 14:23)

그런데, 먹는 것이 양심에 거리낄 수 있다. ‘이거 정말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먹지 말아야 한다.

선지도 순대도, 다 깨끗하다. 하지만 그것을 먹는 것이 꺼림직하게 느껴진다면 먹지 말아야 한다. 의심하고 먹는 것은 죄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을 한다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4)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성도 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비단 소시지나 순대 문제뿐 아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 죄값을 찾겠다고 하신다. 짐승이 사람을 죽이면 그 짐승에게서 그 피값을 찾고, 사람이 살인하면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생명을 찾겠다고 하신다. 짐승에게서 피를 찾으시겠다는 것은 그 동물의 소유주인 사람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찾는다는 뜻의 ‘다리쉬’는 추적하다, 조사하다, 탐구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해 징벌하시겠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은 원어를 직역하면 ‘사람의 손 곧 모든 사람의 형제의 손에서’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새번역)이라는 뜻이다.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누구라도 어떤 사람을 죽이면 그도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살인죄는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앙갚음하라는 뜻이 아니다. 앞서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피를 찾으시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직접, 혹은 정식 재판을 거쳐 내린 사형 집행을 의미한다.

살인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짐승과 사람이 다른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러므로 살인은 사람을 해치는 일일뿐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여기에는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것, 즉 자살도 포함된다. 사람의 생명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이 직접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을 생각해 보자.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흔히 누구를 죽인 사람은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자살한 사람은 그럴 기회가 없으니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구원에 관해서는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택이다. 죽어가는 그 순간 회개하고 용서받았는지 누가 알겠는가.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1절에 이어 두 번이나 말씀하신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축복이고 명령이다.

인간은 허무하게 살해당해서는 안 될 존귀한 존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 받고 번성하여 널리 그득 차게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애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창세기 9:1~2)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세기 9:7)

두 말씀을 비교해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은 같지만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1장에 있는 ‘땅을 정복하라’라는 말이 2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타락으로 땅을 정복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
  •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세기 9:8~17)

8.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새로운 약속, 언약을 맺어주셨다. 계약은 보통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쪽이 절대 약자일 경우 인간들끼리는 강자에게 절대 유리한 내용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계약은 그저 일방적으로 주시기만 하는 언약이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인데 인간이 하나님께 뭘 해드릴 수 있을까. 없다. 그러기에 일방적으로 주시기만 하는 언약이다.

노아는 무서운 홍수에서 구원받고 살아남았지만, 방주 밖 현실은 참담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노아를 복 주시고 노아뿐 아니라 노아의 후손과 방주에 함께 있던 땅의 모든 짐승의 앞날을 보장하는 언약을 해주셨다.

9.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대홍수 심판을 겪었던 노아와 가족들은 또 언제 홍수가 있지는 않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해주셨다.

세상에는 물론 국지적인 홍수도 있을 것이고 마지막 때 불로 하는 심판도 있을 것이지만, 물로 하는 심판은 없을 것이다.

10.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다.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케쉐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활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rainbow와 비슷하다. 참고로 우리말 무지개의 어원을 살펴보자. 무지개는 물을 뜻하는 므(믈, 물)와 문을 뜻하는 지게(문>>지게 호 戶)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물로된 문이 생긴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두려운 기억이 떠오르겠지만, 비가 그친 뒤 나타나는 무지개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위로받고 안심하게 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창세기 9장 1절부터 17절까지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새로 맺으신 언약’ 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창세기 9장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서 노아가 했던 실수와 노아의 아들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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