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는?

성경을 읽다보면 간혹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내용인데요. 바로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속옷 이야기입니다. 속옷을 뺏으려고 법정에 세운 자에게 겉옷 까지 주라고 하신 말씀이죠. 옷을 뺏으려고 재판에 거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것도 남이 입던 속옷을 뺏으려는게 목적이라니요.

마태복음 5장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는?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태복음 5:40)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이 그 자리에서 속옷이며 겉옷까지 홀딱 벗어주고 맨몸뚱이로 집에 가라는 의미가 아닌 줄 압니다. 사실 이 말씀은 악한 자의 횡포나 불의한 요구에 맞서 보복하지 말고 오히려 넘치는 사랑과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지요.

1. 겉옷과 속옷

왜 하필 속옷을 뺏으려 했는지는 먼저 당시의 겉옷과 속옷부터 살펴보아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가. 겉옷 (히마티온, Himation)

마태복음에 히마티온이라고 기록된 겉옷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옷’이라기 보다는 그저 네모난 천이었습니다. 어깨부터 종아리, 또는 발목까지 덮을 수 있어야 했기에 1.5~1.8m 길이는 되어야 했습니다. 또 몸을 한 바퀴 감은 뒤, 어깨 위로 넘겨 걸치거나 팔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충분한 여분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로 길이는 3m가 훌쩍 넘었죠.

이렇게 커다란 직사각형이어야 했던 것은 겉옷이 단순한 ‘옷’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겉옷을 펼쳤을 때 성인 한 명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덮고도 남는 크기여야 밤에 ‘이불’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양모(Wool)로 짠 모직물이었기 때문에 일교차가 심한 지역에서 밤에 체온을 유지하는데 유리했습니다. 게다가 상당히 묵직하고 빳빳했기에, 몸에 감았을 때 특유의 주름(Drapery)이 잡히며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형태가 유지되었습니다.

나. 속옷 (키톤, Chiton)

속옷은 몸에 직접 닿는 긴 튜닉 형태의 옷입니다. 직사각형의 천의 양 끝을 핀(피뷸라, fibula)으로 고정해 어깨에 오게 한 뒤, 그 사이로 머리를 집어 넣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허리띠(조스터, 히브리어 에조르)로 꽉 조여 고정했죠.

이 옷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속옷이라기 보다는 일상복에 가까웠습니다. 집에 있을 때에는 편하게 속옷을 입고, 외출할 때에는 그 위에 겉옷을 걸치고 나가는 식이었죠.

이것은 살에 직접 닿는 옷인만큼 거친 양모가 아닌 부드럽고 흡습성이 좋은 리넨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키톤 안에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속옷은 따로 없었는데요, 이것은 당시 지중해 지역의 기후를 반영한 공통된 문화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는?

2.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했던 이유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겉옷은 밤에는 ‘이불’ 역할을 했습니다. 이불이나 매트리스 같은 침구류는 부유한 상류층이나 로마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서민들은 흙바닥이나 돌바닥 위에 거친 짚을 깔거나 가죽 한 장을 깔고 겉옷을 몸에 두른 채 자야 했습니다. 낮에 입던 겉옷이 밤에 밤이슬과 사막 기후의 혹독한 일교차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한 장비였던 거죠.

가. 법으로 보호받는 재산, 겉옷

이렇게 낮에는 옷으로, 밤에는 방한 장비로 두루 쓰였던 겉옷은 큰 재산인 동시에 필수 생존 템이었습니다. 담요 같은 겉옷이 재산이라니, 요즘으로선 공감이 잘 가지 않겠지만,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겉옷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압류할 수 있는 유일한 동산(動産)이었던 거죠.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은 낮에는 뜨겁지만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겉옷은 유일한 침구(이불)입니다. 겉옷을 뺏긴다는 것은 밤마다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는 뜻입니다.

옷을 뺏긴 자는 추위에 떨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니 빚을 갚을 길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옷을 뺏기는 것은 사회적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와 신명기에는 밤이 되기 전에 겉옷을 돌려보내라고 한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 출애굽기 22:26-27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 신명기 24:12-13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여기서 나오는 이웃의 ‘옷’이 바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겉옷입니다. 마태복음에는 헬라어 히마티온으로, 출애굽기에는 심라(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 왜 마태복음은 헬라어로 썼을까? :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일상에서는 아람어를 썼지만, 당시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이자 국제 통용어는 헬라어였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독자들이 당시 헬라 문화권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도록 히브리어 개념인 ‘심라’를 헬라어 단어인 ‘히마티온’으로 번역해 기록한 것입니다. 어떤 언어로 기록했든 겉옷=심라=히마티온입니다. 똑같은 대상(정사각형의 큰 모직물 겉옷)을 부르는 언어만 달랐던 것이죠.

나. 겉옷 대신 속옷이라도 – 법의 사각지대를 노림

이렇게 겉옷이 법으로 보호받다 보니, 악랄한 사람은 겉옷 대신 가져가야 할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난한 사람에게 달리 가져갈 것이 없다 보니, 그럼 돌려줄 필요가 없는 속옷이라도 가져가야겠다고 법정에 세운 것이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키톤(히. 케토네트 (כּתֹנֶת))안에는 다른 속옷이 없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속바지는 제사장에게 특별히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속옷을 벗어주면 겉옷만 걸치고 가야 합니다. 재산을 가져가는 동시에 수치를 주어 괴롭히는 악의적 공격입니다.

당시 공공장소에서 알몸이 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부끄러운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완전히 거세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겨 나눠가진 것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범죄자나 노예에게 가하던 가장 모욕적인 형벌이 바로 ‘옷을 모두 벗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선 그런 악랄한 사람에게 속옷은 물론이고 겉옷까지 벗어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속옷을 뺏으려는 악한 사람에게,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겉옷’까지 내어주라는 뜻입니다. 속옷까지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주면 채무자는 완전히 알몸이 됩니다.

당시 문화에서 타인을 알몸으로 만드는 것은 그 행동을 한 사람(채권자)에게 큰 수치와 사회적 비난을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즉, 악의적인 요구를 역이용하여 오히려 상대방을 부끄럽게 하고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마태복음 5장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한 이유 속에 숨겨진 고대 유대 사회의 치열한 생존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당시 유대인들은 바지라는 훌륭한 대안을 두고, 왜 이렇게 불편해 보이는 치마 형태의 옷을 고집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 이유와 함께 북방 기마민족의 복식,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킬트 이야기 등 흥미로운 복식사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 글에서 확인하세요.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말씀을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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