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주님 – 깨어 있으라 (7)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오시는 주님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7~20)

다시 오시는 주님 -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한 이콘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한 러시아 그림(이콘,Icon). 동그라미 안에 좌정하신 예수를 천사와 믿음의 선진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림 아랫부분은 낙원(Paradise)의 모습인데, 왼쪽에 앉아있는 것은 아브라함이고, 오른쪽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선한 강도로 자기 십자가를 품고 있다./ wiki

다시 오시는 주님, 오래된 약속

어떤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곧 이뤄질 듯하면서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그 약속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2달도 2년도 아니고 2천 년 전에 한 약속이라니. 세상 사람이 보기엔 아직도 믿고 기다리는 게 바보다.

믿는 사람들이라고 쉬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쳐버리고, 잊어버렸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무덤덤해져, ‘언젠간 오시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닐거야.’ 라고 생각하기 쉽다. 심지어는 ‘지금이 좋아요. 조금만 더 있다 오세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한 번에 세 차례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속히 오리라

주님께서는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 그것도 세 번이나 강조해서 속히 오겠다고 하셨다.

7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셨고, 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라고 하셨다. 그뿐 아니라 20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초청 – 누구든지 오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뿐 아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 누구나 오라고 초청하신다. 듣는 자도, 목마른 자도 모두 오라고 하신다.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신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재림에 관한 말씀은 아니지만, 지금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우리는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다시 오실 예수님 역시 이렇게 바로 지척에 계신다. 자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릴 때다.

우리 곁에 계신 주님

초대 교회 사도들은 재림을 ‘눈에는 안 보여도 늘 함께 계시는 주님이 마치 장막을 젖힌 것처럼 갑자기 눈에 보이는 상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지척에 계시다,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몸소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함께 계신 주님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5~29)

안식후 첫날 저녁때, 제자들은 잡으러 다니는 유대인이 두려워 한데 모여 문을 닫고 숨어있었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 말을 나중에 전해 들은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다.

8일 뒤, 예수님께서는 도마 앞에 나타나셔서 도마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그 말을 했을 때 눈에 보이지는 않았어도 그 자리에 함께 하고 계셨음을 그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이후 여러 차례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셨다. 승천은 재림하시기까진 이제 더 이상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반복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이었다. 사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가운데 주님이 보내신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곁에서 능력을 주시는 주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도행전 3:12)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잡아 일으켰다. 곧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예수님을 찬미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보고 놀라자, 이 일을 행한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너희들이 잡아 죽였던 예수님의 역사임을 증언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디모데후서 4:17)

바울도 같은 말을 전한다. 약하고 못난 우리가 충성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께서 우리 곁에 서서 강건케 하시기 때문이다.

때가 가까왔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계시록 22:10)

때가 가까왔다. 다시 오시는 주님 오실 때가 얼마나 바짝 다가왔는지 인봉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가까왔다.

어떤 법령이 반포, 시행될 때에는 ‘몇년 몇월 며칠부터 시행된다.’고 명시된다. 그때까지는 인봉한채 시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씀은 때가 가까우니 인봉하지 말라고 했다. 변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 에서 말했던 것과 같다. 바로 문밖에 계신다. 잡아당겨 열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전후반 다 끝난 인저리 타임, 종말의 시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데살로니가전서 5:8)

이 종말의 시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되는 말씀이다. 가슴에는 믿음과 사랑으로 흉배를 붙이고, 머리에는 구원의 소망이라는 투구를 쓰라고 하신다. 흉배와 투구는 예복이나 평상복이 아니다. 전투복이다.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부대가 있다. 5분대기 부대(조)다. 이들은 전투병력이다. 잘 때도 전투복에 전투화를 신은 채로 잠을 자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가 이렇다. 공중 권세 잡은 자와 늘 선한 싸움을 하며 다시 오시는 주님 오시기를 고대하는 모습이다. 때가 가까왔다. 깨어 기도하자.


이 글은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깨어 있으라 7 – 다시 오시는 주님‘ (2019.8.4.박지웅 목사)을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 감상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원문이 필요하신 분들은 링크된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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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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