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1)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1)

지난 글(창세기 3장 하나님의 심판 선언) 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한 다음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에 대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 ‘가인과 아벨’ 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과 아벨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1)

  •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오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 여호화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창세기 4:1~7)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 가인을 낳고

‘동침하매’의 원어는 ‘야다’이다. 야다는 원래 ‘알다’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지식적 앎뿐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통한 앎을 의미한다. 여기뿐 아니라 성경에서는 ‘알다’라는 말을 성적인 관계 같이 깊이 있는 앎의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의 ‘알다’ 역시 ‘야다’이다.

아담과 하와는 첫번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다. 가인은 얻다, 생산하다 라는 뜻이 있다고 하며, 두발가인과 연결시켜 대장장이의 뜻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 참고 : 두란노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봐주셔서 사내아이를 얻었다는 뜻이다.

2.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하와는 그 뒤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이라는 말에는 바람, 생기, 허무라는 뜻이 있다.

가인과 아벨은 모두 직업을 갖고 있었다. 가인은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다. 농사를 지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땅을 섬기는 자라는 뜻인 ‘오베드 아다마’ 이다. 아다마는 땅으로 아담이란 말과 연결된다.

아벨은 양 치는 목자였다. 목축업은 성경에 나온 두 번째 직업이 되었다. 첫번째 직업은 아담이 시작한 농업이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나 두 형제는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가인은 자기가 농사지어 거둔 땅의 소산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고(창세기 3:21), 가죽옷을 지어 입히기 위해 동물의 피를 흘려야 했다. 피흘림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히브리서 9:22). 믿음의 백성들은 아담의 가죽옷 대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라디아서 3:27)들이다.

아담과 하와는 사건 당사자였고, 그 이야기는 대대손손 전해져야 했다. 하지만 가인은 피흘리는 제사 대신 임의로 제물을 드렸다. 이것은 선악과의 영향이다.

선악과를 먹고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되었다. 아담은 자기 기준으로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그 맏아들 가인은 자기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채 농작물로 제물로 삼았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이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세우는 것은 교만 중의 교만이다. 교만은 본질적으로 자기 숭배다. 자기를 우상으로 삼아 섬기는 것이다.

▶︎ 성경은 교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다. 아담과 하와가 가르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는 마땅히 행할 바를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잠언 22:6).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 을 열납하셨다. 아벨의 제물이 아니라 아벨과 그 제물을 받아들이셨다. 아벨은 하나님 뜻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 뜻에 따랐다. 그것이 포인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심을 보신다. 제물이 문제가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자의 마음가짐이 문제다.

▶︎ 가인과 아벨, 과연 편애로 희생된 아이들이었을까?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흔히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사무엘상 15:22).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마음,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신다. 그래서 아벨과 그 제물 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 은 받지 않으셨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4)

가인은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탕자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하지만 가인은 오히려 낯빛이 변할 정도로 분개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가인은 분했다. 분한 마음은 상대에게 적개심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스스로 왜 분하게 느끼는지 돌아보도록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다시 선한 성품으로 돌아오기 바라셨다.

가인이 믿음으로 선을 행했으면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으셨을 것이고, 가인이 분하거나 낯을 들지 못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7.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빛과 어두움이 나뉘는 것처럼, 우리 행동 역시 선과 악으로 나뉜다. 흑백논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때마다 선을 행할지 악을 행할지 선택해야 한다. 마음속 갈등이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으로 표현되는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말이다. ▶︎ 아기고양이를 발견하고 갈등하는 플루토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곧 악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분을 품고 대적하는 것은 악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악행은 죄를 부른다. 문만 열고 나가면 만날 수 있을 만큼 죄는 가까이 와서 엎드려 기다리고 있게 된다.

가인에게는 죄(살인)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죄는 어디서 왔나. 사탄에게서 왔다. 선을 행함으로 죄를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탄 마귀의 종노릇만 해주는 셈이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제대로 된 과녁을 벗어나 죄로 향할 수밖에 없다. 죄라는 뜻의 하타트가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인 것은 참 묘하다.


이번 글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1)’ 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 가인과 아벨 형제의 직업과 그들이 드린 제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가인의 죄와 아벨의 죽음, 가인의 자손, 아담과 하와의 세번째 아들 셋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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