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 이야기

성냥 이야기
커피사회/ 문화역서울/2019.1.3.

생일 케이크와 초, 그리고 성냥

성냥. 지금 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성냥을 알까?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서나 들어봤지 구경도 못 해봤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과연 어디서 봤을까 알아맞혀 보시라. 그렇다. 생일 케이크다. “몇 살이에요?”하고 물으며 나이에 맞춰 챙겨주는 초. 보통 그렇게 초를 줄 때 성냥도 함께 준다.

라이터로도 초를 켤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여러 개에 불을 붙이기엔 불편하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몇 개 켜지 않아 엄지가 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 그뿐 아니다. 라이터로는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초는 역시 착 그어 화르르 불타는 초로 켜야 제멋이다. 코를 자극하는 유황 냄새와 함께 점점 줄어드는 성냥의 몸뚱이가 주는 자극에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아슬아슬해 한다.

응급처치와 성냥

성냥을 켤 때 왜 유황 냄새가 날까? 동그란 성냥 머리와 성냥갑의 붉은 면이 마찰하면서 불이 붙는다. 성냥 머리(주로 대가리라고 하지만….)에 들어있는 이산화황이 마찰 면에 있는 적린과 만나 마찰열로 불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이라고 하니 생각이 난다. 아주 어릴 적, 칼에 베이면 엄마는 얼른 상처 주변을 꼭 눌러 피를 나오게 한 다음 성냥갑에 있는 빨간 면을 찢어 상처에 붙인 뒤 실로 챙챙 동여주셨다. 여쭤보니 황 때문에 소독이 된다고 하셨는데(워낙 어릴 때 일이라 잘못 기억했을 수도 있다. 김정운 박사도 그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그러지 않았는가. 기억은 편집이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황이 들어있는 부분은 성냥 머리고 마찰 면에는 인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응급조치를 하고 나서 말짱하게 나은 걸 보면 비록 이름은 잘못 알았지만 어떤 유효성분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리 몸이 지닌 자연치유력에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더해져서였는지 그건 모르겠다.

성냥의 쓰임새

홍보용 성냥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드물지만, 홍보용으로 성냥을 주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오래전에는 정말 흔했다. 담배를 권하는 것이 큰 덕목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여서 더욱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명함을 나누고 곧이어 “담배 한 대 태우시죠.” 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 만남이 주로 이뤄지던 ‘다방’에서 성냥은 소모품으로나 홍보용으로나 공히 필수품이었다.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을 잘 모를 적이라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것을 표 내거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은 유난 떠는 사람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일꾼들에게 일을 부탁할 때 주는 수고비나 팁을 ‘담뱃값’ 이라 이름할 정도였으니.

난방 연료와 성냥

6,70년대 난방 방식도 성냥을 필요로 했다. 당시에 주로 쓰이던 연료는 석탄, 장작, 석유였기에 직접 불을 붙여 태워야 했다. 우리 집에도 바닥 난방은 아궁이에 연탄을 땠고 마루에는 연탄난로를, 건넌방에는 석유스토브를 두고 썼다. 석유스토브는 심지를 돋워 불을 붙여 석유를 연소하는 방식이었는데, 비슷하지만 조리용으로 나온 풍로가 있었다. 문간방 역시 연탄을 땠지만, 가끔 태울 수 있는 쓰레기가 모이면 아궁이에 사과 궤짝이나 겨, 짚, 종이 등을 태우기도 했다. 그때는 과일이나 생선 등 모든 포장이 나무 상자나 종이 포장이어서 태워 연료로 쓰기도 좋았다. 이렇게 불을 붙일 일이 많으니 성냥도 많이 필요할 수밖에.

정전, 양초와 성냥

어릴 적엔 전기 사정이 좋지 못해 툭하면 정전되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 촛불을 켜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있곤 했다. 일렁이는 촛불 위로 둥실둥실 떠오른 가족들의 얼굴. 전등불과는 반대로 턱 아래가 밝고 머리 꼭대기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살짝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실실 웃음이 나오곤 했다.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 어른들께 혼나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러다 다시 전기가 들어오면 엄지와 검지로 심지를 꼭 잡아 불을 끄는 어른들의 모습에 매번 감탄했다.

불장난과 성냥 – 불조심합시다

그러니 집집마다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팔각상자에 담긴 UN 성냥을 큰 통으로 갖춰 놓고 썼다. 불장난하는 아이들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겁이 많아 성냥에 불이 붙기도 전에 던져버리곤 했다. 불장난이 아니라 ‘연습’이라고 우기면서 성냥을 많이도 없앴다. 성공한 날은 얼마나 뿌듯했던지.

나와는 달리 동생들은 겁이 없었나 보다. 바로 밑에 동생은 나와는 달리 야무지게 성냥도 잘 켰다. 다른데 불도 잘 붙였던 것은 막내였는데, 그러다 커튼에 불이 옮겨붙을 뻔하기도 했다.

성냥을 만지다 실수하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다. 성냥을 쓰고 재떨이에 버린다는 것이 아차 실수로 옆에 있는 성냥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빼곡히 꽂혀있던 성냥개비 머리에 순식간에 옮겨붙는다. 느닷없이 화르르 치솟는 불길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졸지에 방안에서 불놀이를 목격하게 된 그 날 그 광경은 정말 몇십 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성냥

대학생이 되면서 다시 성냥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큰길가 여기저기 있던 ‘다방’ 대신, 학교 근처에는 ‘카페‘가 있었다. 물론 ‘독수리 다방’ 처럼 꿋꿋하게 다방이란 이름을 고수하고 있던 곳도 있지만 말이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성냥으로 탑을 쌓고, 미팅 상대와 연결될지 안 될지 성냥으로 알아본다고 애먼 성냥깨나 없앴다.

식당이나 술집은 말할 것도 없다. 고기를 구울 때도 프로판 가스 밸브를 열면서 성냥으로 불을 붙여 불을 피웠던 시절이었다. 난 그런 고깃집이 정말 무서웠다. 불고기는 맛있어도 가스를 열고 성냥불을 댕기는 것은 정말 도박처럼 느껴져 늘 불안했다. 환기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아 고기굽는 연기에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런 곳을 학교 다니고 직장생활 하는 내내 출입했다.

다방 못지않게 성냥을 많이 나눠주던 곳이 있었다. 바로 당구장이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당구장도 일회용 라이터를 나눠주기 시작했지만, 그전까지는 역시 성냥이었다. 요즘은 금연이지만, 옛날에는 당구장은 흡연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방이든 당구장이든, 식당이든 어디서나 담배를 팔았고, 담배를 건넬 때는 성냥도 함께 얹어 줬다. 이렇게 나눠주는 홍보용 성냥갑 중에는 정말 예쁜 것도 많았다. 한때는 모아서 액자를 만들까도 생각해볼 정도였다.

사라져가는 성냥

그러던 성냥이 점점 사라져갔다. 금연 문화가 점차 널리 퍼지고, 연료가 가스로 빠르게 바뀌었다. 일회용 라이터가 성냥의 자리를 야금야금 빼앗았다. 물속에서도 켜지고 극지방에서도 켜지는 성냥이 있다. 군대나 탐험가의 세계에서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성냥은 생일 케이크 촛불을 켤때나 보게 되었다.

며칠 전 큰애와 향초를 켰다. 양키캔들에서 나오는 블랙 체리 향이 고양이에게 인기가 좋다며 사와 식탁에 집에 있는 향초를 모아놓고 켜봤다.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초를 켜는데 역시 라이터로는 무리였다. 성냥이 아쉬웠다. 그것도 기다란 성냥이. 케이크 살 때 주는 성냥을 버리지 말고 잘 두는 게 좋겠다.

어제 합정동 땡스북스에서 귀여운 선물을 받았다.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라는 책을 홍보하는 성냥이었다. 뒷면에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 탐식아재의 식욕자극 에세이’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책 제목인줄 알았다. 성냥을 구해놔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쁜 것을 받게되어 기뻤다. (2019.2.11.추가)


성냥
성냥의 화려한 부활, 사양산업 아닌 ‘틈새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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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2 Responses

  1. Avatar Jaejun Lee 댓글:

    공감에 로그인이 필요없으니 좋으네요~^^
    성냥하니 어릴 때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네요.
    십원 이십원 모이면 바로 샀건게 성냥이고 좀 더 돈을 모아서는 팔각성냥을 샀더랬습니다. 그러고는 친한 친구와 공터로 가서 바로 불장난을… ㅋㅋ 어쩔때는 집에서 고춧가루와 소금을 가지고 나가서 공터에 있는 녹슨 깡통을 씻어 물을 담아와서 길에 피어있는 파란 풀을 뜯어모아 집에서 가져온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끓여 먹었던 아주 무시무시한 기억이 있네요. 그래서 그런지 면역력이 강해 별로 아프지도 않고 반 백년을 살아나고 있다는… ㅎㅎ
    여튼 성냥은 제 어린 시절을 밝게 빛나게 해 주었던 소중한 친구(?) 였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네. 고맙습니다. 이 공감 단추는 zillalikes인데, 로그인이 필요 없고 누른 사람도 드러나지 않아 좋습니다. 잠깐 워드프레스 좋아요 단추를 달았었는데, 이 단추가 나았다는 의견이 많아 다시 복구시켰습니다. ^^

      재준님의 성냥에 얽힌 어린시절의 추억은… ㅎㅎ 정말 대단하군요. 살아남은 것이 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어요. 앞으로의 삶에도 축복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