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중심을 바로잡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출애굽기 33:1~3)

믿음의 중심을 바로잡자
시내산. 호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위키미디어

너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자를 네 앞서 보내 줄 테니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는 않겠다고 하신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 때문이다.

결혼하고 난 뒤에는 몰라도 결혼식 도중에 상대를 배반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랬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언약의 돌판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경배하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런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하셨다.

모세의 세 가지 질문과 하나님의 응답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출애굽기 33:12~15)

그런 하나님께 모세는 세 가지 질문을 한다. 점잖은 표현으로 되어있지만, 그 내용은 오직 하나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간구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 꾸지람을 받은 어린 시절 우리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1. 저 혼자 가요?

모세는 ‘나와 함께 보낼 자를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앞서 사자를 보내겠다’라고 하셨음에도 모세는 함께 갈 자가 누구냐고 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와 함께 가셔야 한다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2. 사랑하신다면서요?

“하나님,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전에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으니 우리와 함께 가셔야 한다고 간청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어디로 가시는데요?

13절에서 모세는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냐고 묻는 것 역시 우리와 함께 가셔야 한다고 간청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백성의 지도자로서 당당히 요구할 수 없지만, 우회적으로 자기 심정을 드러내면서 간구하는 모세.

결국 하나님께서는 14절에서 “내가 친히 가겠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모세가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불안한 속내까지 파악하시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가나안도 의미 없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덥석 붙들고 놓지 않겠다는 각오로 또 간구하는 말씀을 드린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15절)”

모세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가나안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가나안 땅에 가느니, 차라리 하나님 계신 광야에 있겠다고 하는 것이다.

모세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을 얻는 것,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 이것이 모세에게는 전부였다.

믿음의 중심을 바로잡자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 그분만이 우리의 전부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전부로 여기셨다. 그렇기에 독생자이신 예수를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것을 증명한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하나님이 내 전부임을 고백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당신 한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님만 의식된다. 내 첫 번째 렌즈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다.

건강, 직장, 명예….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이 감사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고 더 좋다는 고백. 믿음의 중심을 바로 잡게 되었을 때 나올 수 있다. 부모님은 아이들에게서 받는 선물도 귀하게 여기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다. 우리 믿음의 중심을 바로잡자.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예레미야애가 3:21~25)


이 글은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믿음의 중심 잡기(2019.9.8.박지웅 목사)’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나 느낌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동영상이나 음성, 본문 텍스트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링크된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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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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